내게 맥주는 첫 번째 모금만 맛있는 술이고, 고작 소주잔 두 잔 정도 양만으로 근육통과 두통을 유발하는 술이다.
빠른 속도로 알딸딸해지고 손끝의 감각이 둔해지기는 해도 와인을 마실 땐 몸이 아프지는 않은데, 맥주를 마시면 근육통, 두통, 소화불량까지 나타나곤 한다. 그 와중에 주변에 술 좋아하고 술 잘 마시는 지인들이 주변에 많은 관계로, 술알못 주제가 여러 가지 브랜드의 맥주를 맛 볼 기회가 자연스럽게 많기는 했다. 그런데 탭맥주, 병맥주, 캔맥주, 밀맥주, 흑맥주, 라거 등등 그 맥주들 모두 첫 모금이나 두 모금만 좋다고 느꼈다. 두 모금이나 세 모금부터는 다 똑같이 맛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아잉거 브로바이스와 볼파스 엔젤맨 IPA는 음식을 다 먹어가는 마지막까지도 첫 입의 맛있는 맛이 계속 유지되는 거였다. 내가 싫어하는 맥주의 비린 맛과 향,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거지만 하여간 그 싫은 맛과 향이 안 났다. 술알못 사람의 표현력의 한계. 그런 사람이 아잉거와 볼파스를 어떻게 왜 마셨냐면, 이거 모두 내가 아니라 술 잘 마시는 언니가 샀다. 언니가 라벨에 인쇄된 원재료 정보를 살펴보고 있을 때 난 그 옆에서 라벨의 그림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와인 살 땐 그나마 내 취향 어필을 좀 한다면 맥주, 양주, 소주는 남이 고르고 사는 거 따라 맛이나 보는 수준이다.
아잉거 브로바이스
Ayinger Brauweisse
원산지 독일
알코올 5.1%
용량 500ml
와인앤모어에서 구입 (1병 5천원대)
처음 본 맥주여서 이걸 발견할 날 브로바이스 한 병만 사 보았다가 맛있어서 또 사러 와인앤모어에 또 갔다. 왜냐면 와인앤모어 말고는 내가 간 마트와 백화점에서 아잉거를 판매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사러 간 날 우르바이스Urweiss도 사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브로바이스Brauweisse 쪽이 좋았다.
라벨과 병뚜껑에 귀여움이 묻어 있었다.
너무 예쁘고 귀여운 무드를 어필하고 있어서 사실 관심을 안 줄 뻔했다. 안 살 뻔했다. 맥주병이라고 생각 안 하고 보면 완벽한 동화책 일러스트다. 전문가가 그린 아티스틱한 삽화가 아니라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담백하게 색칠한 그림체다.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 보이는 다양한 기질과 취향 중에서도 한치 빈틈없이 빽빽하게 색을 메꾸는 기법의 그림. 아잉거의 뚜껑 안쪽에 자석을 붙이면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사 오는 기념품처럼 보일 것 같았다.
구글에서 St. Andreas Aying을 검색하면 저 귀여운 그림과 똑같은 장소가 나온다.
이 성당 가까운 곳에 브루어리가 있고, 브루어리 호텔이 있다. 고 하는데, 나 왜 몰랐지, 뮌헨에서 가깝다는데 나 여기 왜 안갔지, 다음 독일 여행의 기회를 기약해야지, 꼭 가야지.
볼파스 엔젤맨 IPA
Volfas Engelman IPA
원산지 리투아니아
알코올 6.0%
용량 568ml
현대백화점에서 구입 (1캔 2천원대)
캔 윗면이 금박 포일로 싸여 있다. 유리병을 따는 소리, 캔맥주를 따는 소리보다 나는 이 얇고 반짝이는 금박지를 벗겨낼 때의 바스락거리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샴페인을 따는 파티 같았다.
현대백화점에서 2천 원대 가격으로 구입했다. 아잉거와 다르게 백화점과 마트와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블랑도 사 봤다. 볼파스 블랑은 내게는 풍선껌 맛이 났기 때문에 나는 IPA에 한 표.
송충이의 솔잎과
나의 와인
맛있는 음식과 페어링해서 맛있게 마시는 사람들 볼 때마다, 특히 맥주 광고에서 나는 꿀꺽꿀꺽 소리 나게 맥주 마시는 모습을 현실에서 목격할 때마다, 와, 저 기분이 좀 궁금하고 나도 술이 막 세진 않아도 적당한 정도는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내 몸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이마와 눈이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숙면을 못하거나, 근육통이 온 것처럼 몸이 쑤신다. 남들이 보았을 때 하찮게 적은 양으로도 그랬다. 맥주, 소주, 정종이 다 그랬다. 탄산음료를 잘 마시는 편도 못 되어서 술 모임에 갈 때마다 편의점 생수나 하늘보리 사 갔다. 또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나 때문에 술 마시는 재미가 덜하겠지'라는 생각이 드니까 상대에게 미안함도 컸다.
그런데, 와인은 아니다. 와인은 나를 잠에 빠져들게는 해도 내 몸을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다른 술 다 못 마셔도, 토마토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와인이라도 즐길 수 있다는 거로 사실 다행이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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