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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여전히 낯설고 놀라운 : 낯선 사람들 1집 <낯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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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도였고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대충 열몇 살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해의 고민'을 듣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다니!
어려서 경험치가 넓지 못했을 어린이? 청소년? 에게는 매우 언빌리버블 놀라운 노래였던 것. 바로 다음 날 동네 상가에 있는 음반 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구입했다. 

 

"'낯선 사람들' 주세요."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열몇 살의 눈에 20-30대 나이의 어른 오빠로 보였던 음반 가게 사장은, 어린 친구가 '낯선 사람들'을 사 가네? 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된 것, 그날 내가 받은 충격은 나의 음악적 경험치와는 상관이 없는 거였다. 요즘 언어로 미쳤다고 표현할만한, 명곡과 명반으로 평가받는 앨범이었다.

 

 

그렇게 해서 '낯선 사람들'을 테이프로 샀고

부모님이 쓰시던 클래식한 소니 워크맨을 갖고 있던 때였다. 이어폰 꽂는 홀이 두 개여서 두 명이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CD로 샀고

CD 플레이어가 벽돌처럼 무거웠는데 또 튼튼했다. 그땐 그런 기기들이 made in china도 아니었을 걸.

아이팟이 생겼을 때 MP3로 들었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을 때 차 안에서 들었다.

듣고 즐기기만 했다. 멤버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좋기만 할 뿐, 그들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집에 있는 LP가 어떤 가수의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새로운 취향이 생길 때마다 만들어지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낯선 사람들'의 노래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지겨운 적이 없다. 힙합과 록을 좋아할 때도 '낯선 사람들'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존재했다.

 

 

 

무대 위에

'무대 위에'라는 곡의 보컬 없는 연주곡 버전은 현재 나의 휴대폰 아침 알람으로 지정되어 있다. 갑자기 와르르 울리는 알람에 화들짝 놀라고 심장이 쿵쾅 뛰는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걸 싫어하는데 이 노래는 페이드인으로 시작되는 곡이어서 좀 평화롭게 깨어날 수 있다. 침대와 잠이 소중한 내게 이 알람의 단점은 때때로 깨어나지 못하고 반복 재생되는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는 것...이지만.

 

 

 

왜 늘...?

1번부터 10번까지의 모든 트랙이 빠짐없이 다 훌륭한 그중에 굳이 꼽으라면 꼽는 나의 최애는 '왜 늘...?'인데, 이소라라는 가수가 유명해진 이후에야 이 노래의 목소리가 이소라인 것을 알았다. 나 근데 이때의 이소라의 목소리가 왜 더 좋지. 나른한데 너무 힘이 세고 폭죽이 저 위로 올라가 터지는 것 같고 강렬하게 날카롭고 말랑한데 또 관능적이다. 이거 아무 말이 아니라 솔직한 나의 감정.

 

 

 

 

낯선사람들-1집-CD
낯선 사람들 1집 수록곡들

 

낯선사람들-1집-CD
낯선 사람들 1집 CD

 

 

 

여기까지 쓰다가 찾아봤다. 1993년 11월 발매된 앨범이다. 2023년이 되려고 하는 2022년에 들어도 내 귀에는 옛날 노래 같지는 않다. 그만큼 하나도 안 촌스럽다. 지금 들어도 cool하고 새롭고 세련됐고 고급스럽다. 특정 음악에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모를 일인데 그렇지 않고 들었을 때, 옛날 노래가 가진 향수 특유의 바이브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좀 이성적 판단 능력을 잃어서 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겠냐고 할 수 있는데 뭐 아무튼 나는 지금 들어도 처음 경험했던 열몇 살의 그날처럼 신선하다고. 최근 발표곡이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다. 이제야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대도 신선하고 새로울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낯선 사람들' 1집 앨범의 음악과 비슷한 한국 가요를 나는 아직 접해본 적 없다. 옛날 가요도 최신 케이팝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 이게 할 말인가 싶은데, 뭐 그렇다 치고, 들어본 적 접해본 적이 없다. (조하문의 '눈오는 밤'을 안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걸 듣고 내가 신이 나서 좋아하니까 언니가 기막혀했다. 언니 말로는 '네가 꽂히는 옛날 노래에 어떤 공통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고.)

 

좋은 멜로디, 좋은 가사, 좋은 연주와 좋은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좋은 음악이 많고,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주는 이유로 좋은 노래가 되는 음악이 많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놀라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 '낯선 사람들'을 만들고 노래했던 이 사람들은 열몇 살의 나를 그날 충격에 빠뜨려 놓고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 가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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