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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도대체 바카라 루쥬를 뿌리고 왜 지하철을 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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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스크랑
내 머리카락에
냄새 다 묻었잖아요



바카라 루쥬Baccarat Rouge를 못 견디는
사람의 하소연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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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의 지하철에서

정차역의 문이 열리고 걸어 들어오는 여자에게서 바카랏 루쥬로 추정되는 달고 진득한 향이 훅 풍겼다.
문이 열리면서 유입된 공기와 에어컨 바람으로 더 훅 확산되었을 거였다.
그녀는 나의 옆 사람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을 거야, 코를 그렇게 찌를 정도는 아니야, 바로 옆보다는 나아, 했다.
하지만 내 쪽으로 솔솔 넘어오는(넘쳐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 동풍남풍처럼 바카랏풍이 부는 것 같았다.) 향은 코를 찌를 정도까지 아니라 해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 정거장을 더 갔을 때 일어나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다음날까지도 내 마스크에선 어제의 달디 단 (아마도 바카라 루쥬였을) 향이 났다.
그 짧은 시간에 마스크에 냄새가 밴 것이었다.
찐득한 단내가 다음날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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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이었고
이른 저녁이었다

9호선 지하철이었다.
실내는 조금 추울 정도로 쾌적했고 바깥은 숨 막히게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다.
(이날 습도가 강남98%, 마포99%, 파주100%로 기록된 날이었다.)
졸음이 와서 눈을 붙였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평화롭게 코 자고 있을 때 (오늘도 또) 바카라 루쥬의 향이 마스크 안으로 훅 들어왔다.
나의 왼쪽은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이었고, 오른쪽은 내가 잠들기 전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금 승차한 듯 보이는, 내 앞 11시 방향 우뚝 선 한 분이 있었다.
나는 잠을 다시 자고 싶기도 했고, 내릴 목적지가 가까웠기 때문에,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 대신 신문으로 얼굴을 덮었다.
또 마스크에 향이 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 분은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게, 이미 내 머리카락, 내 옷, 내 어딘가에 향이 묻은 후였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문득문득 바카라 루쥬의 향이 훅 올라왔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세상에, 이게 뭐야.

 

 

///
이런 날도 있었다

지하철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산하고 헐렁했다.
앉은 사람과 사람 사이 빈자리가 1, 2개씩 있는 정도였으니까.
어느 정차역에서 문이 열리고 닫힌 후부터 바카라 루쥬가 지하철 한 칸을 채웠다. (맙소사.)
한산했는 데다가,
내 앞과 옆은 남자 승객들이었고, (남자한테서 가끔 바카라 향이 날 때 있지만 여자가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더라.)
심지어 새로 탑승한 승객들은 내 앞과 옆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이 향을 휘감고 탔는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한두 정거장 지난 후 향이 사라졌기 때문에 누군지 모를 '해당 승객'이 하차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도 내 마스크에는 바카라가 또! 또! 묻었다! (와 진짜. 해도 너무하네.)
 

 

 

 

 

아니, 도대체 왜 이러세요

 

바카라 루쥬 쓰시는 분들! 도대체 왜 지하철을 타시는 거예요?

이러려면 자차 운전을 하세요!
묻고 따지고 싶지만 😮‍💨 개인의 취향을 묻고 따질 수가 없으니 곤란하다.
게다가 바카라 루쥬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 중에서도 아주 특급 아이코닉한 존재다.

취향 자체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취향 뿌리고 대중교통만은 타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음.


인기와 호불호를 떠나 단 몇 초 사이 1미터 떨어진 사람한테까지 묻고 옮기게 하는 향을 만드는 게 맞냐, 옆의 옆에 앉은 사람에게까지 순식간에 향 입자가 내려앉게 하는 건 아니지 않냐, 피할 시간은 줘야지, 사람이 떠나고 없는 텅 빈 공간에 향이 왜 고여있는 거냐, 마치 내가 뿌린 줄 알았잖아, 프란시스 커정아. 그러니까 바카라 루쥬의 보틀에는 '금연' 아이콘처럼 '대중교통 탑승 금지' 아이콘이라도 인쇄하는 게 어떻겠니···.

 

그 와중 다행이라면 다행인 거. 나의 지하철 주 이용 시간대는 출퇴근 인파로 혼잡한 때는 아니다.
나와 비슷한, 또는 나보다 심한, 향수 멀미하는 직장인들이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버스에서 하차하는 걸로 끝나지 않겠지.
사무실에서 동료의 향수를 하루종일 맡아야 할 수도 있잖아. 업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위장병 걸릴 것만 같고 안 먹은 것도 올라올 것만 같은 향수 멀미가 아마 향덕들은 체감이 안 될 것이다.
(조금은 알아 주세요. 한 번은 생각해 주세요. 그냥 취향 호불호 문제가 아닙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담배보다는 낫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향료 때문에 구역이 올라오는 신체적 반응이 담배연기와 크게 안 달라요. 심지어 이게 몸에 묻은 채 집에 온다고 상상해 보세요.)

한동안 3, 4년 간은 지하철 이용 횟수가 한 달 중 평균 한 번 꼴이었다.
자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때와 그전에도 지하철과 버스에서 향수 냄새가 이렇게까지 많았을까🤔를 상기해 보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향수 쓰는 사람과 향수 브랜드가 많아져서인 거야? 아니면 나 혼자 예민해진 거야? (백화점 입점 향수 매장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중인 걸 보면, 향수 브랜드 CEO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보면, 아마 전자일 확률.)
최근 1년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인데, 몰랐다 정말, 지하철을 탈 때마다 향수 걱정을 하게 될 줄.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겨울에는 난방 바람이 부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향수를 피하느라,
자리를 한 번도 옮기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날이 잘 없다.
제발 내 옆에 앉은 사람 향수 안 뿌린 사람이기를. 제발 내릴 때까지 바카라 향만은 맡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탄다. 그 마음이 매우 조마조마하고 매우 간절하다.

 

 

 

 

 

여러 향들 중 굳이 바카라만?

이렇게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향수들은 잠시 몇 분 참거나, 자리를 피하면 그만인데,
바카라 루쥬만은 자리를 옮기는 방법조차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도망쳐도 나한테 자꾸 묻어 오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식당에서, 백화점에서, 심지어 동네 공원을 걷다가도,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만난다. 집콕하지 않는 이상 꼭.
반경 5미터에 사람이 없는데도 어디서 이 향이 슥 날아온다니까?
이 정도면 바람 타고 떠 다니는 게 아니라 자력으로 움직이는 거 아니야? 사실은 발이나 날개가 달린 거야? (이게 사실이라면 프란시스 커정은 천재가 맞다.) 꼼짝없이 당하는 기분이라서 불쾌하다.

 

 

 


그런데 '그냥 바카랏 루쥬'만으로도 이렇게 강력한데

이것의 엑스뜨레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과 공포였다

셀러가 엑스뜨레 시향을 권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아요 했지만
속으로는 바카랏 루쥬 엑스뜨레 뿌린 사람은 와 정말 살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려줘.)
그런데 또 뭐가 있는 줄 알아? 엑스뜨레 200ml가 있다. 엑스뜨레가 200ml로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구입한다.

 

 

그 인기와 소문이 자자한 바카라 루쥬를 처음 알았던 날
내게 떠오른 이미지는 이랬다

해가 뜨거운 한낮 한여름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리다 끈적하게 굳은 질감의 투명 빨간 막대 사탕과
그 위로 몰려드는 오글오글 개미 떼들
이 향을 맡자마자 머릿속에 펼쳐진 장면이었다

 

고급스럽다고? 어디가? 사탕과 개미 떼를 떠올린 사람에게는 너무나 그 반대. (미안합니다.)
밖에서 바카라 루쥬를 맡을 때마다 고급스러워 보인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바카랏 자체를 고급 이미지로 생각한 적 없어서 생긴 나의 편견의 아웃풋일 수도 있다.

하여간 내게 바카라 루쥬란
고급도 아니고, 요구르트도 아니고, 쇠향도 아니고,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사탕의 찐득 끈적끈적,
합성향료와 인공색소로 만든 불량식품의 단내,
눈코입을 막고 싶은 향,
이다.
차라리 조금 청량하거나 보송한 질감이면 달아도 견딜 만했을 것 같다.
이거 고급스럽다는 사람은 뭐 어떤 걸 연상하는 걸까. 궁금한데 물어볼 데가 없다.

 

 

화학물질과민증

호흡곤란과 심각한 두드러기가 일어날 정도는 아닌데
인후통, 두통, 소화장애, 피부의 염증이 생기곤 하고 헛구역이 올라오는 걸 보면 과민한 경향이 없지 않다.
호텔, 백화점, 화장실, 때로는 병원까지, 요즘은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방향제 냄새가 너무 고역이다.
음식 냄새를 없앨 필요가 있는 상황을 대비해 내 가방에도 1ml, 10ml 같은 휴대용이 때때로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남에게 묻히고 옮기는 향수보다는
차라리 음식 냄새(술 냄새는 말고)가 좋은 것 같다. 말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자탕 냄새, 쌀국수 냄새, 고기 냄새가 나은 것 같다.
옆 사람에게서 감자탕, 쌀국수, 고기 냄새가 난다고 해서 자리를 이동한 적은 없었다.

 

 

커정이네 집에서는
그랑 수와Grand Soir 빼고는 와닿는 향이 없다

그랑 수와. 바카랏만큼이나 강력하다. 발향과 지속의 힘이. 
다만 바카라 루쥬를 매일 한두 번 이상 맡는다면, 그랑 수와를 뿌린 낯선 이는 아직 마주쳐보지 못했다.
이 집 향수 중에서 그랑 수와만 좋았고 그랑 수와만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다. 샀다는 건 아니고.
아쿠아 어쩌고 아쿠아 저쩌고들(아쿠아이러쿵저러쿵 되게 아쿠아들이 많아서 이름을 다 알기 어렵다.)
내게 올드한 화장품 분내였다. 또는 섬유유연제를 과량 들이부어서 나는 가루세제 냄새였다.
젠틀 플루이디티 골드는 달았다. 바닐라보다도 캐러멜의 질감을 생각나게 했다. 캐러멜라이즈드 바닐라 같았다. 36시간은 지나야 맘에 드는 향이 났다. 좋은 마음으로 선물 받은 향수였는데 한 번 뿌리면 3일은 지속되는 걸 알고 나서는 손이 잘 안 가게 되었다.

커정이네 집에 있는 또 다른 나의 취향은 35ml 보틀 쉐입이다. 맘에 든다. 그런데 스티커 없는 디자인으로.

사람 일 모르지. 몇 년 후 취향이 바뀌어서
와, 너무 좋잖아? 바카라 엑스뜨레가 이렇게 좋았나? 살까?
할지 모를 일이다.
높은 확률로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더바디샵에
'레벨 로즈버드'라고 있다

지금도 판매 중인지 모르겠는데. 이거 맡으면 바카라 루쥬가 짠! 떠올라서
'바카라 너무 좋은데 쇠향이 싫어요'라는 사람에게 살짜기 소개하고 싶은 제품이다.
특유의 쇠향 때문에 불호다, 좋다, 나뉘는 후기가 많은데
메탈릭한 그것이 그렇게 세? 내게는 쇠가 연상되지도 않았고, '종이'에서만 서늘한 기운이 슬쩍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한테서는 한 번도 이 서늘함을 못 느꼈다. 내 코 기준.
극도로 달고 스티키한 것만으로 내가 온통 압도당해서 쇠향 따위 알 겨를 없나 봐.

 

 

궁금한 거

바카라 루쥬처럼 달고 달고 단 향

또는 앰버리한 향이나 코코넛 향, 락토닉한 향

을 애정하는 사람들은 단짠의 자극적인 음식이나 느끼해서 헤비한 음식도 혹시 좋아하고 즐겨 먹는지 조금 궁금하다.
나는 텁텁하고 메슥거려서 소화가 안 될 정도로 그런 류 음식에 취약한 대신
샐러드를 소스 없이 매일 먹고
생양배추, 통밀빵을 맨입으로 잘 먹는다. (운동하는 사람 아니고 식단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그게 입맛에 맞아서. 생채소 아삭아삭 씹을 때의 촉촉한 단 맛, 그게 너무 맛있다.)
음식 취향과의 접점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여기까지.
꽤나 부정적인 후기를 불특정다수?(아니, 이 블로그에 다수가 오지는 않지.)에게
굳이 오픈하느냐 하는 고민이 없지 않았으나
인기가 대단한 향수인데 싫어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 소수인 것 같아서 한 번 기록해 보고 싶었다.
바카라 루쥬를 힘들어하는 사람의 긴 하소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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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baccarat rouge란. 오글오글 개미떼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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